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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뭇한 이야기 +++ 감동과 모범이 되는 글입니다.
 
ydlee  2014-03-05 13:39:28 

                                  

장래가 촉망되는 한 청년이 육군 소위로 임관되어 전방에 근무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하사병의 실수로 수류탄 사고를 당해 한 쪽 팔을 잃게 되었다병원에 입원 중 대학에 다닐 때 사귀던 여자 친구가 병원으로 병문안을 오게 될 때에 그는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몇번이나 망설이고 기회를 엿보다가 여자 친구에게팔이 없는 나를 지금도 좋아하느냐?” 떨리는 가슴을 억제하면서 물었다. 반신반의 하면서 묻는 질문에 여자 친구는 나는 너의 팔을 좋아한 것이 아니고 너를 좋아했기 때문에 팔이 있고 없음은 상관하지 않는다.” 는 대답을 얻었을 때 정말로 천지를 다시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자 친구는 그 때부터 병원 근방에 방을 얻어놓고 병원엘 드나들면서 간호에 간호를 거듭하였다. 그러나 여자 친구의 아버지는 그것이 아니었다. 평생을 한 팔이 없는 사람의 팔이 되어야 하는 딸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의 딸에게 그 남자를 포기하고 새 길을 찾을 것을 권유하였다.
그랬더니 그의 딸은 아버지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만약에 아버지가 한 팔을 잃으신다면 엄마가 아버지를 떠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하세요?” 그 말에 아버지도 딸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서 그 남자와 사귀는 것을 허락을 하게 되었다.

그 뒤 그는 제대하여 한 팔이 없는 것만큼 더 큰 노력을 하여 린스와 샴푸를 합친 효과를 내는 하나로를 개발했고 20세부터 80 세까지 사용할 수 있는 2080 치약을 개발하고, 영상통화를 가능하게 한 앱을 개발하는 등의 업적을 세워통신사의 부사장이 되었다.
그가 바로 조서환 前 ktf부사장, 前 애경산업 이사 현재 세라젬헬스앤뷰티 대표 조서환씨의 이야기이다. (아래 글은 그의 수기에서 발췌한 부분)

 

아 내를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1학년 때다. 어찌나 공부를 잘하던지 초등학교 때 그 사람 성적을 앞선 적이 없다. 어린 마음에저 애와 결혼하면 좋겠다란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변하지 않았다. 고교 졸업 직후 육군3사관학교에 입교했을 때는 연애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고1 때부터 펜팔 친구로 지낸 우리는 편지를 엄청나게 주고받으면서 지고지순한 사랑을 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육군 소위로 임관한 지 얼마 안돼 오른손을 잃고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입원해 있는데 그 사람이 너무나 그리웠다. 그렇지만 머리와 팔에 붕대를 칭칭 감은 모습을 보이려니 덜컥 겁이 났다. 한 손이 없는 상태로 그녀를 어떻게 만날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머릿속에 세 가지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첫째, 나를 본 순간 놀라 도망칠 것이다. 둘째, 이게 웬 날벼락이냐며 엉엉 울 것이다. 셋째, 기가 막혀 멍하니 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반응을 보이든 내 가슴이 미어질 것만은 확실했다. 연락하자니 두렵고, 안 하자니 보고 싶고. 하지만 보고 싶어서 미칠 지경인지라 힘들게 연락을 했다. 그녀가 왔을 때 내 왼손엔 링거가 꽂혀 있고, 오른팔은 붕대로 감겨 있었다. 양손을 쓸 수 없어 어머니가 떠주는 밥을 먹고 있었다. 고향 뒷산에 흐드러지게 핀 산도라지 꽃색의 코트를 입은 하얀 얼굴의 그녀가 통합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그 모습이 눈부시게 예뻤다. 그런 그녀가 날 본 뒤 아무 말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는데 가슴이 미어졌다. 세 번째 시나리오가 맞았다. 병실 안 분위기가 갑자기 어색해졌다. 어머니는 밥을 먹여주다 멈췄고, 병실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이야기하라며 자리를 피했다.

아직도 나를 사랑하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자존심 탓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존심보다 더한 것은 두려움이었다. 만일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면 어쩌나. 나는 아무 말 못하고 그저 입을 굳게 다문 채 그녀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 사람은 여전히 우두커니 바라보기만 했다. 불쌍해 보일 내 처지보다 저 사람이 왜 그렇게 안타깝고 딱해 보이는지,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짧은 시간에 별별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다. 날 사랑하느냐고 묻고 싶다가도, 다른 사람에게 보내줘야 하는데 누가 나만큼 사랑해줄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말없이 바라만 보기를 30분째. 용기를 내어 겨우 입을 열었다.

아직도 나 사랑해?” 그 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지금도 그 모습을 잊지 못한다. 아니 앞으로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천사 같았다. 세상을 다 얻어도 이보다 기쁠까. ‘불행의 깊이만큼 행복을 느낀다고 하지만 정말 그때 느꼈던 행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왼손만 가지고 이 예쁜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을 텐데. 이건 너무 이기적이다. 진짜 사랑한다면 그만 보내줘야 한다.’ 나는얼굴 봤으면 이걸로 끝내자는 마음에 없는 말을 했다. 그러자 아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진 당신에게 내가 필요 없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지금부턴 당신 곁에 내가 있어야 해요.” 이 말을 듣자마자 어떻게든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생각이 가슴 깊은 곳에서 큰 파도처럼 밀어닥쳤다.

그때부터 내 안에 잠들어 있던불굴의 거인이 깨어났다. 모태 신앙인 아내는 날 위해 매일 새벽 기도를 했고 나는 링거를 꽂은 왼손으로 글씨 연습을 했다. 항상 아내는 내가 뭐든지 할 수 있다며 격려와 지지를 보냈다. 이후 내 인생의 목표가 된 아내는 지금까지 매일 소중한 조언을 해주고 있다. 사업상 힘들 때도 꼭 아내와 상의한다. ‘백발백중명답을 말해 하나님 음성처럼 듣고 산다.

 

*또 하나의 감동과 모범이 되는 글이 있습니다.

 나이 11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래론 여동생이 하나 있다.

전업주부였던 엄마는 그때부터 생계를 책임지셔야 했다.

못먹고못입었던 것은 아니였지만 여유롭진 않았다.

대학졸업  입사 2년만에 결혼을 하였다.

처음부터 시어머니가 좋았다

시어머니도 처음부터  아주 마음에 들어하셨다.

 

10  결혼1년만에 친정엄마가 암선고를 받으셨다.

 엄마 건강도 걱정이였지만,수술비와 입원비 걱정부터 해야했다.

남편에게 얘기했다남편은 걱정말라고 내일 돈을 융통해  터이니 

오늘은  자라고 얘기해주었다

 

다음날 친정엄마 입원을 시키려 친정에 갔지만엄마도 선뜻 

나서질 못하셨다마무리 지어야  일이   있으니 4 후에 

입원하자하셨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시어머니께서 전화가 왔다.

"지은아 울어울지말고 ..... 내일 3시간만 시간  다오"

다음 어머니와의 약속 장소에 나갔다.

어머니가 무작정 한의원으로  데려가셨다.

미리 전화 예약 하셨는지 원장님께서 말씀하셨다.

 

"간병하셔야 한다고요.."  짚어보시고 몸에 좋은 약을 

  지어주셨다백화점에 데려가셨다솔직히 속으론  답답했다.

죄송한 마음이였던  같다.

트레이닝 복과 간편복 4벌을 사주셨다선식도 사주셨다.

 

함께 집으로 왔다어머니께서 그제서야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환자보다 간병하는 사람이  힘들어병원에만 있다고 아무렇게나 

먹지 말고아무렇게나 입고있지 말고.."

말씀하시며 봉투를 내미셨다.

 

"엄마 병원비 보태써니가 시집온  얼마나 됐다고 돈이 있겠어...

그리고 이건 죽을 때까지 너랑 나랑 비밀로하자 남편이 병원비 

구해오면 그것도 보태써...  아들이지만남자들 유치하고 애같은 

구석이 있어서 부부싸움    친정으로 돈들어간   번씩은 

얘기하게 되있어그니까 우리 둘만 알자."

 

마다했지만 끝끝내  손에  쥐어주셨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어머니께 기대어 엉엉 울고 있었다.

 

2천만원이였다......

친정엄마는  도움으로 수술하시고 치료받으셨지만,

이듬   엄마는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오늘이 고비라고 하였다눈물이 났다남편에게 전화했고,

갑자기 시어머님 생각이 났다나도 모르게 울면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어머니는  걸음에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남편보다 

 빨리 병원에 도착하셨다.

엄마는 의식이 없으셨다엄마 귀에 대고 말씀드렸다.

 

"엄마... 우리 어머니 오셨어요... 엄마.. 작년에 엄마 수술비 

어머님이 해주셨어.. 엄마 얼굴 하루라도    있으라고..."

엄마는 미동도 없으셨다당연한 결과였다.

 

시어머니께서 지갑에서 주섬주섬 무얼 꺼내서 엄마 손에 

쥐어주셨다우리의 결혼 사진이였다.

 

"사부인... 저예요.. 지은이 걱정말고사돈처녀 정은이도 걱정말아요.

지은이는 이미  딸이고요.... 사돈처녀도 내가 혼수 잘해서 시집 

보내줄께요.. 걱정 마시고 편히 가세요..."

 

그때 거짓말처럼 친정엄마가 의식 없는 채로 눈물을 흘리셨다.

어머니는 듣고 계신 거였다.

가족들이  왔고 엄마는 2시간을 넘기지 못하신  그대로 눈을 감으셨다.

망연자실 눈물만 흘리고 있는  붙잡고 시어머니께서 함께 울어주셨다.

어머니는 가시라는 데도 3 내내 빈소를 함께 지켜주셨다.

우린 친척도 없다사는게 벅차서 엄마도 따로 연락 주고받는 

친구도 없었다하지만 엄마의 빈소는 시어머니 덕분에 

3 내내 시끄러웠다.

 

"빈소가 썰렁하면 가시는 길이 외로워..........."

 친정 엄마가 돌아가시고 시어머닌  동생까지  챙겨주셨다.

가족끼리 외식하거나여행     동생을 챙겨주셨다.

 동생이 결혼을 한다고 했다.

동생과 시어머님은 고맙게도 정말  이상으로  지내주었다..

시어머님이  다시 나에게 봉투를 내미신다.

"어머니남편이랑 따로 정은이 결혼 자금 마련해놨어요.

마음만 감사히 받을께요"

 

도망치듯 돈을 받지 않고 나왔다버스정류장에 다달았을  

문자가 왔다 통장으로 3천만원이 입금되었다 길로 다시 

어머니께 달려갔다.

어머니께 너무 죄송해서 울면서 짜증도 부렸다안받겠다고.

어머니가 함께 우시면서 말씀하셨다.

 

"지은아...  기억안나친정 엄마 돌아가실  내가 약속 드렸잖아.

혼수해서 시집  보내주겠다고 이거 안하면 나중에  엄마를 

무슨 낯으로 뵙겠어"

시어머님은 친정엄마에게 혼자 하신 약속을 지켜주셨다.

  날도  엉엉 울었다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순둥이 착해 빠져가지고 어디에 쓸꼬....   불쌍한 사람이 도움을 

주지도받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야... 그리고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하고 울고싶을  목놓아 울어버려"

 

제부될 사람이 우리 시어머니께 따로 인사드리고 싶다해서 

자리를 마련했다시부모님우리부부동생네.

그때 어머님이 아버님께 사인을 보내셨다그때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초면에 이런 얘기 괜찮을지 모르겠지만사돈처녀 혼주자리에 

우리가 앉았음 좋겠는데..."

혼주자리엔 사실 우리 부부가 앉으려 했었다.

 

" 알고 결혼하는 것이지만 쪽도 모든 사람들에게  친정 부모님 

안계시다고 말씀 안드렸을 텐데... 다른 사람들 보는 눈도 있고...."

그랬다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던 부분이였다.

 

 동생네 부부는 너무도 감사하다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동생은 우리 시아버지 손을 잡고 신부입장을 하였다.

 동생 부부는 우리 부부 이상으로 우리 시댁에  해주었다.

 

오늘은 우리 어머님의 49제였다.

가족들과 동생네 부부와 다녀왔다오는길에 동생도 나도 많이 울었다.

오늘 10  어머니와 했던 비밀 약속을 남편에게 털어 놓았다.

  병원비 어머니께서 해주셨다고...

남편과  부등켜 안고 어머님 그리움에 엉엉 울어버렸다....

 

 지금 아들이 둘이다.

 지금도  생활비를 쪼개서 따로 적금을 들고 있다.

 어머니께서 나에게 해주셨던 것처럼 나도 나중에 

 며느리들에게 돌려주고싶다.

 

 휴대폰 단축번호 1번은 아직도 우리 어머님이다.

항상 나에게 한없는 사랑 베풀어 주신 우리 어머님이다.

 

어머님.... 우리 어머님... 너무 감사합니다.

어머니 가르침 덕분에 제가 바로   있었어요.

 

힘들 시간  이겨낼  있었고요.. 

어머님...  사랑합니다..그립습니다...

제가  어머니께 받은 은혜많은 사람들게 베풀고 

사랑하고 나누며 살겠습니다....

 

너무 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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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우리 교회에서   

1등 가정  1등 교인  1등 국민 으로

모범 글로 추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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