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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젊은이들이 교회를 외면하는가? (당당 뉴스에서 옮김)
 
ydlee  2014-07-03 12:17:15 

한국교회의 교인 수가 급격히 줄고 특별히 젊은이들이 교회를 외면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줄어들면, 서양의 교회들처럼, 한국교회에도 노인들만 남게 되고 결국 교회의 문을 닫게 될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심각한 일이다.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이 심각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젊은이들이 교회를 찾아올 수 있는 적극적인 방안을 찾아내야만 한다. 그런 방안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왜 젊은이들이 교회를 외면하는지 그 이유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우리교회 찬양대의 경우 40대와 50대가 주를 이룬다. 2, 30년 전에는 20대도 있었고 30대가 주를 이루었는데, 지금은 20대는 없고 30대도 소수이다. 60대도 있고 심지어 70대도 있다. 이런 현상을 보고 나이가 들어도 건강해서 찬양대에 설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실상 나이든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젊은이들이 유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교회의 찬양대에는 머리가 흰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많은 것을 보았는데 우리도 기울어가는 미국교회를 따라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근래에 와서 중고등부의 학생이나 청년부의 회원이 많이 줄었다. 교회에서는 교육전담 사역자들을 모셔서 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있지만, 주일학교가 해마다 뒷걸음질한다. 그동안 찬양팀을 육성하고 젊은이들을 위해서 열린 예배를 도입하기도 했다. 단기 해외선교도 보내고, 유명한 강사들이 주관하는 특별집회에도 참여시키고, 교사훈련도 열심히 했지만, 재정지원의 규모와 노력에 비해서 그 효과는 부진했다. 젊은이들이 줄어드는 교회! 이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놓고 걱정하면서 씨름해 왔다. 교회가 본래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교회가 소금의 역할을 다 하자고 말한다. 말씀과 성령에 의지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자는 주장도 있다. 우리의 기도가 부족해서 그러니 기도에 힘쓰자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계속 교회를 멀리하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다. 도대체 왜 그들이 교회를 멀리하는가?

서둘러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젊은이들이 줄어드는 한국교회는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세월호처럼 침몰하고 있다는 것을 너도 나도 알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한국에 국가 개조가 필요한 것처럼 한국교회에 대대적인 교회 개조가 필요한 것 아닌가? 그런데 모두 태평이다.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인가?

젊은 이들이 줄어드는 것은 교회에서 신앙교육을 소홀히 한 데 원인이 있다기보다는 교회 외부의 상황 변화에 교회가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문 장로의 총리 낙마 사건은 현실 인식이 부족한 신앙인의 언어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그가 말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주신 시련이라는 신앙적 언어 때문에 그의 편을 들고 싶어 하는 교인들이 많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삶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그 신심 깊은 장로는 잠깐 무대에 나왔다가 관객의 야유를 받고 퇴장하는 어릿광대가 되었다. 여기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언어가 호소력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의 자리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젊은이들에게 신앙을 심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삶의 자리를 살펴야 한다. 그들의 문화, 그들의 의식을 포용하지 못하는 신앙교육은 외면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을 무조건 교회에 맞추려하기보다는 교회가 젊은이들에게 맞추려고 노력해야 한다. 변하는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몰락한 서양의 교회를 반면교사(
反面敎師)로 삼아서 우리는 그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젊은이들을 보듬으려면, 교회를 살리려면, 교회가 새로운 문화에 맞게 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젊은이들은 계속 교회를 떠날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변화를 세속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실상 그것은 세속화가 아니고 교회가 주어진 삶의 정황에 적응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다.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살아남고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사멸한다는 적자생존의 법칙이 상식이 되었다. 따라서 급속히 변하는 문화에 대한 적응의 여부는 교회의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왜 젊은이들이 교회를 외면하는가?

가 장 중요한 이유는 이 시대가 과학이 발달한 이성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현대의 과학적, 이성적 사고와 맞지 않는 교회의 가르침이 젊은이들에게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성경의 기록이 과학적이라고 가르치거나 성경에 나오는 모든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이라고 가르치면 젊은이들은 처음에 어리둥절하게 되고 나중에는 학교나 책을 통해서 배운 것을 따르면서 성경을 멀리하게 된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반응이 마땅치 않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일전에 모 교회의 안수집사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지금 고등학교에 다니는 그의 막내가 교회를 나가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그 아이가 중학교 다닐 때 시험시간에 교회에서 배운 대로 답안을 작성했다가 오답처리가 된 후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믿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로 아무리 교회에 나가자고 해도 막무가내로 나가지 않는단다. 특별히 당시 교과목 담당 교사가 자기네 교회의 주일학교 교사였는데도 오답처리를 했다는 데에 충격이 컸던 것으로 보인단다. 그 아이는 교회에서 배우는 것은 쓸모가 없는데, 거기 나가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창세기의 천지창조를 비롯한 기록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과학의 시대에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구약의 기록을 과학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지질학을 배운 젊은이들이 7일 동안에 천지가 창조되었다거나 지구의 역사가 대략 6,000년쯤 된다는 말을 받아들이겠는가? 그것은 교황청에서 지동설을 주장하는 갈릴레오에게 지구중심적인 생각을 강요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다음으로 젊은이들이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이유들 중의 하나가 레저문화의 확산이다. 자동차가 많이 보급되고 토요일 휴무제가 되면서 젊은이들이 산과 들로 나갈 수 있는 수단과 시간이 생겼다. 그리고 자유로운 남녀의 교제 문화가 활성화되어서 젊은 남녀들이 삶을 즐기려는 풍조가 만연되어 있다. 결혼 연령이 늦어지는 것이나 독신주의자들이 늘어나는 것도 생을 즐기자는 풍조와 맞물려 있다.

미국에서 내가 방을 빌려 쓰고 있던 집의 할아버지는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가끔 교회에서 심방을 나오는 것을 보았다. 하루는 심방을 나온 사람이 돌아간 후에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할아버지는 당신이 젊었을 때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찬양대원으로 열심히 봉사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언제부터 교회에 나가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자동차를 사서 여자들을 데리고 놀러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대답했다. 취직을 해서 할부구매를 할 자격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자동차를 샀다고 했다.

지금 한국에서도 그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삶이 그대로 재현되는 느낌이다. 대학 다닐 때부터 자동차를 모는 젊은이들도 있지만, 많은 젊은이들이 취직을 하면 우선적으로 자동차를 산다. 물론 출퇴근을 위해서 차가 필요하겠지만, 레저 활동을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 차이기 때문이다. 차가 없으면 여자들과 교제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젊은이들을 위해서는 좋은 세상이지만 교회를 위해서는 참 어려운 때가 되었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외면하는 이유들 가운데 헌금에 대한 부담이 있다. 차를 사고, 놀러 다니고, 결혼자금을 준비해야 하는 젊은이들은 돈에 쪼들리게 마련이다. 그들이 결혼을 하면 집을 장만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아이들을 낳아서 유치원을 보내기 시작하면 사교육비가 보통이 아니다. 그래서 요즘 가계 부채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수입의 십분의 일을 내라고 한다. 실상 열심히 교회를 다니려면 십일조 외에 주일헌금, 감사헌금, 선교헌금, 건축헌금, 각종 부서의 회비 등 돈이 많이 든다. 돈이 많아야 교회를 다닐 수 있다는 말이 돌기도 한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교회의 헌금에 부담을 느낀다.

우리 교회 장로 하나는 딸이 성당을 나간다고 걱정을 했다. 결혼을 하면 남편이 부인의 종교를 따르는 것이 보통인데 성당을 다니는 사위를 얻었더니 딸이 남편을 따라서 성당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딸의 신앙교육을 잘못 시킨 것이 아니냐고 꼬집었더니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성당에서는 헌금에 대한 부담이 적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내 친구가 젊을 때 헌금 문제로 가톨릭으로 교회를 바꾸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계산이 빠른 요즘 젊은이들로서는 그럴 수 있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요즘 교회를 등지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신앙을 버리지 않고 성당을 나가니 다행이라고 위로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대로 교회가 세상 사람들의 지탄을 받고 있기 때문에 교회가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기 어렵다. 교회 지도자들이 비리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거나 세습을 한다는 등의 소문이 파다해서 교인들이 얼굴을 들기가 어렵다. 더구나 요즘에는 유병언이로 대표되는 구원파가 자기들이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눈이 곱지 않다. 목사들이나 장로들의 말실수도 구설수에 올라 있는데, 그들의 언행이 민망할 정도로 수준 이하인 경우가 많다. 왜 이럴까?

우리는 그들이 받은 신학교육을 의심해 볼 수밖에 없다. 그들이 그렇게 우리를 실망시키는 것은 부실한 신학교육뿐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쉽게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폭의 두목이 목사가 되었다는 말이 들리더니, 다음에는 어느 코미디언이 목사가 되었다고 했다. 한참 후에 들으니 그 조폭 출신 목사는 다시 조폭 노릇을 하다가 감옥에 가고, 그 코미디언 출신 목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목사일을 그만 두더니 부인을 폭행해서 이혼소송을 당했다고 한다. 일전에 들은 소식에 의하면 소위용팔이 사건의 주범이었던 김용남 씨가 목사 안수 3일 만에 교회에 불을 질러서 방화혐의로 철창신세를 지게 되었다고 한다. ‘생선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말처럼, 각 교단에서 앞 다투어 급조한 저질의 목사들이 교회 망신을 시켜왔다. 그들 때문에 훌륭한, 성실한 목사들까지 모두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판이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의 지탄을 받는 목피아의 세계에 젊은이들이 발을 들여놓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결혼을 하더라도 상대의 가정이 어떤 가정인지를 꼼꼼히 살핀다. 아버지는 무엇을 하는 분인지, 형제는 몇인지, 그리고 당사자는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 신체적으로 건강한지 등 여러 가지를 알아본다. 요즘에는 그 가정에 유전적 병이 있는가를 알아보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필이 꽂혀야만 한다. 그래서 요즘 중매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옛날에는 부모의 권유를 쉽게 따랐고 웬만하면 적당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향하여 손가락질을 해 대는 지금 이렇게 까다로워진 젊은이들이 교회에 들어오려고 하겠는가? 들어왔다가도 발을 빼버린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 근본원인은 자격이 부족한 목사들을 양산하기 때문이다. 선교초기에는 지도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목회자의 양산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목사의 과잉시대를 맞고 있다. 내 친구는 직장에 나가면서 2년 간 야간 신학교에 다니더니 2년 만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이렇게 속성과정을 통해서 목사자격을 주면 부실한 지도자들이 많이 나오게 되고 그 사람들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게 마련이다.

오늘날 목회자의 양산으로 인해서 젊은 목회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젊은 목사들이 소명의식을 가지고 교회를 개척할 경우 빚을 내서 교회를 세운다. 그러나 많은 개척교회들이 2, 3년을 버티지 못하고 교회시설을 철수한다. 결국 젊은 목사들이 빚더미 위에 앉게 된다. 이러한 경우 그 개척자는 그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에게 실망하여 신앙적으로 상처를 입게 될 뿐 아니라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신용불량자가 된다. 요즘 관심병사라는 말이 나왔는데, 결국 관심목사가 많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관심목사들이 사고를 치는 경우 교회의 신인도가 떨어지게 된다.

젊 은이들이 줄을 지어 모여드는 교회를 꿈꾸어 본다.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그런 교회를 꿈꾸어야 한다. 꿈이 없으면 노력도 없고 그 꿈을 이루려는 노력이 없으면 한국교회는 결국 좌초하고 말 것이다. 미국의 LPGA에 참여하는 한국 낭자들이 우승한 후 인터뷰할 때면꿈이 이루어졌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그들에게 꿈이 있었기에 열심히 운동할 수 있었고 열심히 하다 보니 그들의 꿈이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그들이 교회를 외면하는 원인들을 제거해야 한다. 이것은 유토피아적인 꿈일지 모르지만, 한국교회의 유지와 부흥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다.

젊 은이들이 모여드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주일학교에서부터 젊은이들에게 성경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성경의 기록은 그대로 있지만, 문화가 달라지고 인간의 인지능력이 발달하면 그 문화와 인지능력의 수준에 맞추어서 성경을 읽고 해석해야 한다. 독자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해석은 외면당하게 마련이다. 만약 지금 어떤 사람이 성경에서는 노예제도를 인정하고 있으니 성경의 기록대로 노예제도를 유지해도 된다고 주장한다면 누가 그 말을 받아들이겠는가? 성경에는 교회에서 여자들은 잠잠하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지금도 여자들은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말하면 여자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과학이 급속하게 발달하는 시대에 창세기의 기록들이 현대과학으로 증명될 수 있다느니 그것을 실제로 일어난 사실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는 먼저 과학의 세계와 종교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창세기의 기록은 지질학이나 천체물리학이 발달하기 이전의 지식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현대의 과학적 연구 결과와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과학 분야에서는 새로운 이론이 정립되면 이전의 이론은 무용지물이 된다. 그런데 창세기의 기록을 과학적인 기록이라고 젊은이들에게 가르치거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고 가르치면 현대의 과학교육을 받은 누가 교회에 남아 있겠는가?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만들었다는 것을 글자 그대로 믿을 젊은이들이 있겠는가? 하와를 뱀이 유혹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하면 설득력이 있는가? 노아가 만들었던 방주에 온갖 종류의 동식물을 실었다는 말이나 지구를 홍수로 멸망시켰다는 것을 젊은이들이 사실로 받아들이겠는가? 그리고 아브라함 이전의 사람들이 700살이나 900살까지 살았다는 것은 사실일까? 이런 성경의 기록을 받아들이지 못할 젊은이들을 위해서 교회는 전통적인 강압적인 방법을 버리고 그런 것들이 근대 이전의 지식수준에서 신앙을 설명하려는 방편이었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성경의 기록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가감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젊은이들은 교회를 외면하게 될 것이다. 그 다음의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맡길 것인가? 그렇다면 교회의 장래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레저 활동이 활발해진 이 시대에 교회가 젊은이들의 욕구를 어떻게 만족시킬 수 있는가 고민하면서 교회에서 레저 활동을 활성화하고 스포츠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미국의 교회들에 체육관이 있는 것도 그러한 배려에서 나온 것임이 분명하다. 이 레저 문제가 현대 한국교회가 당면한 가장 어려운 과제이다. 이에 대한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 레저를 위한 시간을 마련해 주고,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시설을 제공해야 한다.

요즘 교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오후 예배이다. 전에는 오전 예배와 저녁 예배로 나누어서 주일에 두 번 예배를 드렸는데, 요즘은 오전 예배와 오후 예배로 바뀌었다. 이것은 현대인의 삶의 양식에 적응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주일에 두 번 예배를 드리려는 횟수에 집착하다 보니 12시에 오전 예배가 끝나면 교회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두 시나 세 시에 예배를 본다. 주일에는 꼭 두 번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오후 예배를 성경공부로 대치하는 방법도 있고 오후 예배를 없애는 방법도 있다. 레저 활동이 활발한 이 시대에 주말에 교인들을 교회에 붙들어 놓으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왕 교인들의 삶을 고려하려고 한다면 그들이 주일 오후에는 쉴 수 있도록, 그들 나름대로 자유로운 시간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금 그렇게 하는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다.

헌금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이것은 참 어려운 일이지만 가톨릭교회에서는 이미 실시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돈이 많으면 개인이나 단체를 가릴 것 없이 타락하게 되어 있다. 요즘 대형교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주범은 따지고 보면 돈이다. 우리가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면, 대형교회에서부터 십일조를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대형교회에는 교인들이 많으니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행사비나 인건비를 줄이는 등 긴축 예산을 세우면 헌금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도 교회가 유지될 수 있다.

문제는 소규모의 교회에 있다. 소규모의 교회에서는 목회자의 생활비조차 조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비량 목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한국의 목사들은 일하지 않고 교회에만 매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인이 20명이든, 10명이든 목사는 일하지 않고 기도만 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시리라 믿기 때문인가 아니면 일을 하면 목사의 품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일자리가 없기 때문인가? 그러면 먼저 일자리를 구해놓고 교회를 개척하면 어떨까? 오직 성경을 내세우는 개신교 목사들을 위해서 바울이 그 모범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그리고 목회자 양성문제는 각 교단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목회자의 과잉배출로 인해서 한국의 교회 수가 과잉상태에 이르렀다. 특히 교인들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추어서 목회자의 수급조절을 해야 한다. 내 교단과 네 교단이 경쟁할 시대는 지났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목사안수를 해서 그들을 목회현장으로 내몰 때 나타나는 개인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폐해를 직시해야 한다. 지금은 양적 부흥보다는 질적 부흥을 추구해야 할 때이다. 각 교단은 시대의 요구에 맞추어서 목사양성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신학교육의 수준을 높이는 일이다. 폭넓은 소양과 수준 높은 신학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목사가 되어야 한다. 신학대학에서는 교회사, 성경해석학, 현대신학 외에 인문학 과목들과 자연과학 과목들을 신학과 관련시켜서 심도 있게 가르쳐야 한다. 교인들의 학문적 관심이 다양하고 학력수준이 높아진 지금 소명의식 하나만으로 목회하던 시대는 지났다. 2,000년 가까이 수많은 신학자들이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 온 성경을 현대인의 입장에서 분별력을 가지고 이해하고 가르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교회가 젊은이들의 신앙적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교회를 외면한다. 이단 종파가 늘어나는 것은 기성 교회 지도자들의 가르침에 대한 교인들의 불만 때문이라고 한다. 세상 안에 살고 있는 교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목회자들이 먼저 그들의 삶의 정황과 그들의 사고방식을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폭 넓게 그리고 깊이 있게 성경을 이해하고 가르쳐서 교인들의 다양한 신앙적 갈증을 해소시켜주어야 한다.

젊은이들을 위한 이런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을 동반하는 쇄신이 요구된다. 한국교회가 쇠퇴해가는 지금 젊은이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대처하려 하지 않고 방관만 한다면 그 사람은 예수의 참된 종이 아니다. 그 사람은 교회의 장래야 어떻든 나만 편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명감이 전혀 없는 사람, 책임감이 없는 사람, 소위 삯군이다. 그런 사람은 성경에는 젊은이들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구절이 없다고 자기를 정당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달란트를 받은 종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사람을 악하고 게으른, 무익한 종이라고 질책하시면서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실 것이다.

자꾸 젊은이들이 줄어들면 결국 서양에서처럼 교회가 문을 닫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미 젊은 세대가 교회를 외면하기 시작했고 전체 교인의 수가 자꾸 줄어들고 있다. 1,000만 교인이 650만으로 줄어들었다는 통계가 나왔다. 이대로 방치하면 줄어드는 속도에 가속이 붙을 것이고 가속이 붙으면 걷잡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그런 예를 유럽과 미국의 교회에서 보았다. 그러한 사태가 한국에서 일어나서는 안 된다. 따라서 젊은이들을 위한 대책을 내일로 미룰 겨를이 없다. 이미 한국교회의 발등에 불똥이 떨어졌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언급한 몇 가지 교회 혁신방안이 실현 불가능한 꿈같은 이야기로 들릴지 모른다. 그런데 기울어가는 한국교회를 바로 세우려는 혁신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한가로운 선택적인 일이 아니다. 바로 세우지 않으면 결국 모두 깊은 바다에 수장되는, 생사가 달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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